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강원 영월(寧越) 사람이다.
1919년 4월 21일 양변면(兩邊面) 금마리(金馬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전개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천도교인 천선재(千善在)와 보통학교 학생인 장준영(張俊永)·엄정훈(嚴廷勳)이 각각 중심이 되어 계획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그 후 독립만세운동은 양변 면장을 지낸 박수창(朴受昌)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계획은 박수창의 집에서 아들인 박광훈(朴光勳)과 처남 이용헌(李容獻), 그리고 이병익(李炳翼)·박수영(朴受永)·박재호(朴在鎬)에 의해서 수립되었다. 또한 박수창의 손자인 박춘희(朴春喜)·김창진(金昌鎭)·박수찬(朴受燦) 등이 태극기를 만들었다.
4월 20일 영월 군수 석명선(石明瑄)이 마을에 강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주천 장터로 가서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한 것을 변경하고 강연장에서 군수와 함께 시위하기로 하였다. 전수길을 비롯한 박수경(朴受景)·박수항(朴受恒)·박수호(朴受祜)·탁원근(卓源瑾)·남상은(南相殷)·이용규(李龍奎)·원하현(元夏鉉)·홍봉관(洪鳳官) 등은 윗·아랫마을을 다니면서 [만세연명부(萬歲連名簿)]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4월 20일에 오기로 한 군수는 다음날인 21일에 마을에 왔다.
두 명의 직원과 도착한 군수는 마을의 원로인 박수창에게 만세 반대자 명부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박수창은 이것을 반대하였고 오히려 군수를 군중 앞으로 데리고 와서 만세를 부르게 하고 강제로 만세연명부에 서명하게 만들었는데, 전수길도 이 일에 동참하였다. 군수가 돌아간 후 헌병파견대에서 대장 중굴(中堀)이 보조원 조병욱(趙炳旭)과 5명의 군인을 이끌고 와서 전수길과 주동자들을 체포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964∼967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595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