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울진(蔚珍) 사람이다.
1933년 진기열(陳基烈), 윤두현(尹斗鉉) 등이 조직한 울진적색농민조합(蔚珍赤色農民組合) 산하의 독서회 결성에 참여하는 등 활동하였다.
윤두현, 진기열 등은 1932년 11월 울진적색농민조합의 결성을 위해 발기문을 우송하며 뜻을 함께 할 동지를 규합하였다.
그리하여 1933년 3월 29일 울진군 북면(北面) 덕구리(德邱里)에서 윤두현·진기열·남왈기(南曰紀)·남석순(南石順)·최학소(崔學韶)·전봉인(田鳳仁) 등은 울진적색농민조합의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강령을 채택하였다.
또한 진기열을 중앙사무국 책임, 남왈성을 조직선전부 책임, 최재소를 부인부 책임으로 선임하고 활동방침으로 각리에 독서회와 야학을 설치하여 청소년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어 4월 간부회의를 개최하여 동 조합의 산하에 소년부를 설치키로 하고 최학소를 그 책임으로 선임하였다. 5월에는 진기열이 동 조합의 기관지를 제작하고 조합원들에게 이를 윤독케 하여 항일의식을 공고히 하였다.
장호명은 이들의 취지에 찬성하여 최학소가 근남면(近南面)에 소년구락부(少年俱樂部)를 가장한 독서회를 조직하는데 참여하였다. 이들은 각지에 5개의 야학회와 2개의 독서회를 결성하여 항일의식과 사회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활동사실이 발각되어 장호명을 비롯한 동지들은 1934년 8월경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가혹한 고문을 받은 끝에 병을 얻어 출옥 후 1년여만에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35. 7. 8. 咸興地方法院)
- 思想彙報(1935. 9. 高等法院 檢事局) 第4號 9∼20面
- 思想犯罪綴(1935년)
- 朝鮮日報(1935.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