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완도(莞島) 사람이다.
그는 일찍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여 기회를 모색하고 있던 중, 1920년 1월 정학균(鄭鶴均)이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자 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정학균은 광무황제의 붕어(崩御) 1주기에 해당하는 1월 22일을 기하여 독립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의하였다.
이에 이현열은 자신의 집에서 이수열(李守烈) 등과 모임을 개최하였는데 홍철수도 이에 참여하였다. 이 자리에서 오는 22일 광무황제 1주년제식(週年祭式)을 기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는 데 합의하였다.
한편 정학균은 동교의 기숙사에서 태극기 40본을 제작하고 거사 당일인 22일 아침 태극기 30본을 추가 제작한 후, 광무황제 1주년제식이 끝난 11시경 고금면 농상리(農桑里)에서 태극기를 학생들에게 배부하였다. 정학균이 커다란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시위에 돌입하였는데 홍철수는 선두에서 학생들을 지휘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 일로 일경에 체포되어 1920년 2월 10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로 태(笞) 90도를 받았다. 이후 그는 향리에 야학을 개설하고 문맹퇴치와 독립군가를 가르치는 등 민족의식 고취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20. 2. 10. 光州地方法院 長興支廳)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62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