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영일(迎日) 사람이다.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최치환은 국권회복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정용기(鄭鏞基) 의병장이 이끄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6년 3월 광무황제의 밀명을 받은 정용기는 이한구(李韓久), 손내숙(孫迺叔) 등과 힘을 합쳐 각지에 통유문(通諭文)과 권고문을 발송하는 한편, 지방관에게는 통고문을, 각 진(鎭)에는 격문을 보내 거의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또한 민중에게 호소하는 청조문(請助文), 농민을 안도시키는 고시문, 유림을 격려하는 격고문 등을 내어 거의를 준비하였다.
이윽고 정용기 의병장은 포수와 농민 등의 민병을 규합하여 경북 영천에서 산남의진을 결성하였다. 최치환은 군사 초모단계에서부터 참여하여 각지역을 연락하고 군기(軍器)를 수집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러나 적의 모략에 속아 정용기 의병장이 붙잡히는 바람에 제대로 뜻을 펴지 못하고 의진은 해산되고 말았다.
출옥한 정용기 의병장은 뜻을 굽히지 않고 1907년 각지에서 활동하던 의사들을 모아 북동대산(北東大山)에서 산남의진을 재결성하였다. 최치환은 이때에도 의진에 참여하였다.
이후 산남의진은 해산군인을 포섭하여 병력을 보강하고 군령을 정하여 장병들을 단속하는 등 군세를 확장하고 같은 해 8월부터는 청하읍을 습격하고 청송 신성(薪城)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며 위맹을 떨쳤다. 또한 영천 자양면(紫陽面)에서는 일본군 3명을 효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7년 10월 입암(立巖)전투에서는 중과부적으로 의병장 정용기를 비롯하여 손영각(孫永珏), 권규섭(權奎燮) 등의 장령들이 전사 순국하는 패전을 겪었다. 최치환은 이때 체포되어 수년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山南倡義誌 下卷 10·59面
- 山南義陣遺史 全卷 467·735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35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