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아일랜드 콜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천주교 신부(神父)로 1933년 10월 내한(來韓)하였다.
평소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 동양에서 천주교 포교는 불가능할 것이며, 일본이 패배하면 한국은 일본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고, 동양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1939년 가을부터 1941년 9월 사이에 여러 차례 교인들에게 또는 교인들의 질문에 답하여 당시 신문과 라디오 방송의 중일전쟁 관련 허위보도를 비판하였다. 일본군은 물자가 부족하여 장기전에서 결국 패배할 것이라는 등 일본의 패배를 예언하여 교인들에게 독립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주었다.
1939년 4월경 목포천주교회에서 열린 전라남도 천주교 선교사 집회에서 “일본 신문에 의하면 일본군은 창사(長沙)까지 진격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으나, 상하이(上海)의 라디오에서는 창사 전투에서 일본군의 패전을 보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 신문 보도는 허위이다”라고 중일전쟁 관련 허위보도를 비판하였다. 10월경 제주읍에 사는 청년 신도인 허봉학(許鳳鶴)에게 “이번 중국사변에서 일본도 많은 군대를 상실하여 특별지원병이라는 명목 하에 한국인을 군인으로 보충하고 있다”고 폭로하였다.
1941년 8월경 자신의 집에 놀러온 초등학생에게 “우리 천주님은 천황보다 위대하다. 진무(神武) 천황(天皇)은 처를 두 사람이나 두고 있었다”고 일왕을 비난하였다. 9월 14일경 허봉학이 자신의 집 벽에 걸어둔 이른바 ‘황실 사진’을 설명하자 그에게 “너도 쇼와(昭和) 천황이 되려는가?” 하고 야유하였다. 이 일로 그는 재판을 받을 때 불경죄(不敬罪)가 추가되었다.
1941년 12월 일경에게 체포되어 1942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육군형법 및 해군형법 위반 및 불경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1942. 10. 24)
- 제주도지(濟州道誌)(제주도, 1982) 하권 430면
- 제주도지(제주도, 1993) 제3권 710면
- 우리와 함께한 사람들(Those Who Journeyed With us:St. Columban 선교회, 1918~1992년)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