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33년 10월 내한(來韓)하였다.
1939년 봄부터 1940년 가을 사이 제주도에서 여러 차례 교인들에게 “일본의 신문에는 일본군만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도되고 있지만, 그것은 전부 허위다. 금후 중국이 영·미의 원조를 받아서 사변이 장기화되면 일본은 패망한다. 이번에 한국에 지원병제도를 만들어 한국인을 군으로 징집하는 것은 중일전쟁으로 일본군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 일본은 반드시 패전할 것이다”라고 폭로하였다.
특히 1940년 가을경 서귀포에 사는 강붕해(姜鵬海)에게 “현재 일본·독일·이탈리아 3국이 동맹을 체결하고 있으나 이번의 영독전(英獨戰)에서 독일이 패전할 경우에는 후일 일본은 영미(英美)에 의해 참혹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같은 무렵 서귀포천주교회에서 신도 10여명에게 “지금 일본이 승리하고 있어도 중국은 대국으로서 영·미의 원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최후에는 일본이 패전할 것이다”라고 일본의 패전을 예언하였다.
1941년 12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42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육군형법 및 해군형법 위반’으로 금고(禁錮)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1942. 10. 24)
- 제주도지(濟州道誌)(제주도, 1982) 하권 430면
- 제주도지(제주도, 1993) 제3권 710면
- 우리와 함께한 사람들(Those Who Journeyed With us:St. Columban 선교회, 1918~1992년)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