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12일 의성군 비안면(比安面) 쌍계동(雙溪洞)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박영화(朴永和)의 주도로 박영신(朴永新)의 집에서 박영달(朴永達)·배중엽(裵重曄)·배달근(裵達根) 등과 협의하에 추진되었다. 이들은 3월 12일, 200여 개의 태극기를 제작하여 이날 12시경, 박영신의 집앞에 모인 2백 여명의 시위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이들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동리(洞里)를 시위행진 후, 뒷산에 올라가 만세를 외치고 자진 해산하였다. 그러나 이때 급보를 받은 의성경찰서에서는 이날 오후 4시, 순사부장과 경찰이 이곳 주재소로 응원 출동하여 대대적인 검거 작업을 펼쳤다. 그는 이때 붙잡혔으며, 이해 4월 17일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4. 17. 大邱地方法院)
- 判決文(1919. 5. 14. 大邱覆審法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3·1運動實錄(李龍洛, 1969) 760面
- 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사(광복회 대구경북연합지부, 1991) 131面
- 항일독립운동의성군자료집(의성문화원, 1992) 48·263·264·265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7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