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군인으로 군대해산에 항거하여 시가전을 벌이다 전사순국하였다.
일제는 한국 군대해산을 위해 기존 제13사단 병력 외에 제12여단을 증파하였고 총기 60,000여 정도 새로 들여왔다. 그리고 8월 1일 대한제국 시위대군을 훈련원에 비무장으로 집합시켜 강제로 군대를 해산하였다.
그러나 이에 항거하여 시위대 제 1, 2연대의 각 1대대는 부대 전체가 항쟁에 돌입하였다. 이것은 제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朴昇煥)의 항의 자결에 충격받은 병사들의 노도같은 봉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훈련원으로 출발 직전 대대장의 자결 사실을 알게되자 전부대원이 재무장하고 봉기했던 것이다. 아울러 제2연대 1대대에도 파급되어 그들도 재무장하고 남대문과 서소문 일대에서 일본군과 불꽃 튀는 격전을 벌였다. 양 대대의 병력은 1,182명인데 기관총 3문을 앞세운 일본 침략군과의 교전은 대한제국 최후의 항전과도 같았다. 이 싸움에서 일본군 미미(梶尾) 중대장을 비롯하여 4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가 있었으나 한국군도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노덕세는 1903년 9월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06년 육군 보병 참위(參尉)로 진위대 보병 제1대대부(大隊附)에 임명되었으며, 1907년 4월 시위대 보병 제2연대 제1대대부로 옮겨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8월 1일의 시위대 강제 해산에 항거하여 시가전을 전개하다가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第1卷 633·634面
- 官報(內閣 法制局 官報課, 1907. 9. 21) 第3877號
- 勅命(陸軍步兵參尉 盧德世補鎭衛步兵第1大隊附, 1906. 10. 18)
- 陸軍武官學校 卒業證書(陸軍武官學校長 李學均, 1903. 9. 20)
- 勅命(盧德世 任陸軍步兵 參尉者, 1902. 7. 6)
- 勅命(陸軍步兵參尉 盧德世 補侍衛 步兵 第2聯隊 第1大隊附, 1907.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