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교주 (敎主) 임창세 (林昌世) 가 주도하는 청림교 (靑林敎) 의 신도 (信徒) 로서 동년 (同年) 6월경 (月頃) 연길현 (延吉縣) 과 화룡현 (和龍縣) 의 접경 (接境) 포태산 (砲台山) 에서 일제 (日帝) 의 패전 (敗戰) 을 기원하는 기원제 (祈願祭) 를 행하고 미군 (美軍) 의 한국 상륙 (韓國上陸) 을 예상하여 환영준비로 미국기 (美國旗) 를 제작하며 신도 (信徒) 들을 규합 , 일제 (日帝) 의 패전 기미 (敗戰機微) 를 보아 일제히 봉기할 것을 계획하는 등의 활동으로 동년 (同年) 12월경 (月頃) 일경 에 피체 (被逮) 되어 옥고 (獄苦) 를 치르다가 8.15 광복 (光復) 으로 출옥 (出獄) 하였으나 동년 (同年) 9월9일 고문 여독 (拷問餘毒) 으로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북 경성(鏡城) 사람이다.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일본제국주의는 1941년 말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였다. 그리하여 1943년에는 패전의 기미가 엿보이자 청림교주(靑林敎主) 임청림(林靑林)은 독립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하고, 화룡현(和龍縣) 북도구(北道溝)에 거주하고 있는 청림교 간부 현천해(玄天海) 외 수명과 함께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때에 안충국은 1944년 교주(敎主) 임창세(林昌世)가 주도하는 청림교(靑林敎)의 신도로서 이해 6월경 연길현(延吉縣)과 화룡현(和龍縣)의 접경 포태산(砲台山)에서 일제의 패전을 기원하는 기원제(祈願祭)를 행하고, 미군의 한국상륙을 예상하여 환영준비로 미국기(美國旗)를 제작하며 신도들을 규합, 일제의 패전기미를 보아 일제히 봉기할 것을 계획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1944년 12월경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8·15 광복으로 출옥하였으나 1945년 9월 9일 고문여독으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6大創會(靑林敎) 專案(延吉縣 公安局, 年度未詳) 第5冊
- 抗日朝鮮民族運動 靑林敎 大彈壓報告書(上田敬夫, 1954)
- 1944年 12月 中旬 間島省에서 朝鮮民族獨立運動彈壓罪行의 情況(石田傳郞, 1960)
- 6大創會(靑林敎) 專案(延吉縣 公安局, 年度未詳) 第3冊
- 6大創會(靑林敎) 專案(延吉縣 公安局, 年度未詳) 第1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