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거창군 가북면의 김병직(金秉直)과 가조면의 어명준(魚命俊)은 3월 20일 장기리 장날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날 정오 무렵이 되자 400~500명의 장꾼이 모여들었다. 두 사람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장꾼들이 일제히 호응하면서 수천 군중이 삽시간에 시위행렬을 이루었다. 그들은 시위행렬의 선두에 서서 시장내외를 행진하면서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장기시장에서 시위한 후 두 사람은 빠져나와 가북면의 헌병분견소로 가서 헌병대의 유리창과 기물을 파괴한 후, 의자에 앉아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시위주도자 5~6명을 포박하여 밤늦게 돌아온 헌병과 보조원은 이 광경에 놀라 김병직과 어명준을 폭행하자 두 사람도 이에 대항하여 난투가 벌어졌다. 두 사람은 반죽음이 되어 거창헌병분대로 압송되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인근의 인사들은 3월 22일 거창읍 장날에 거사하기로 하고 가조면·가북면을 비롯하여 각 면에 연락하여 주민을 동원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이 일을 수행할 위원으로 김호 등을 선출하였다. 3월 22일, 군중은 이른 아침부터 장기시장으로 모여 들었다. 오전 11시경 무려 수천 명의 군중이 장기의 만도정(晩島亭) 앞에서 6인을 중심으로 선언서 낭독식을 엄수한 후 행렬을 이루어 거창읍으로 향하였다. 시위행렬이 사포현(沙浦峴)에 이르렀을 때 거창헌병대와 용산 헌병분견대가 총을 발사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김호는 3월 22일 거창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1919년 조선소요사건상황(朝鮮騷擾事件狀況)(조선헌병대사령부, 1919)
- 고등경찰관계적록(高等警察關係摘錄)(경상남도경찰부, 1936) 23~24면
- 3.1운동실록(이용락, 1969) 6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