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남 갑산(甲山) 사람이다.
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정규군인 진위대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그는 일찍이 미국 하와이로 이주하여 노동에 종사하다가 귀국하여 러시아와 중국 국경지역의 여러 곳에 민립학교를 설립하고 민족교육을 실시하였으나 1908년 일제의 한국병탄 야욕이 노골화되어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의병활동에 투신하였다. 그리하여 최재형(崔在亨)의 동의회(同義會)와 이범윤(李範允)의 창의회(彰義會) 의병들로 구성된 연해주 의진의 국내진공작전에 참여하였다.
이들 연해주 의진은 전제익(全濟益)의 지휘로 안중근(安重根)이 우령장(右令將), 엄인섭(嚴仁燮)이 좌령장(左令將)을 맡아 부대를 나누어 국내로 진공하였다. 동 의진은 함북 경원(慶源), 경흥(慶興) 등지에서 일군과 교전하여 승리한 후 국내 의진과의 연합을 위해 무산, 갑산 방면으로 남진할 계획을 세우고 진군하였으나 회령(會寧)·영산(靈山)에서 일군과 조우하여 패전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의진이 흩어진 뒤에도 독자적으로 회령의 일본군 부대를 소각할 것을 계획하고 이를 추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일경의 잔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너희 소위 보호정책이라는 것은 다 물시하고 소위 수비병이라 하는 것도 속히 걷어가거라. 너희가 하루라도 지체하다가 우리 대장이 출세하여 백두산에 참모본영을 설치하고 대마해협을 부시는 날에는 너희가 종자도 보존키 어려우리라"고 호통을 치고 일제의 회유에는 "나 외에도 1,990만 정병이 있거늘 이제 내가 무엇을 꺼리끼어 대의를 불고하고 구차이 목숨을 도생하리오"라고 호령하는 등 기개를 굽히지 않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大東共報(1909. 3. 21)
- 舊韓末 西北邊境地域의 義兵硏究(朴敏泳, 韓國精神文化硏究院 博士學位 論文, 1995) 307·31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