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사천(泗川) 삼천포(三千浦) 사람이다.
1937년 11월부터 경남 사천군 삼천포읍(三千浦邑)에서 정성기(鄭聖基)와 야학교사로 활동하였다. 정종호는 일제의 식민통치체제에 불만을 느끼고 이의 개선을 위해 농촌지도자의 양성과 농민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면서 농촌의 중견인물과 협력하여 사회제도의 불공평을 인식시키고 야학교(夜學校)를 이용하여 학생들 교육에 매진하였다. 그는 정성기와 함께 야학교사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에도 나서게 되었다. 그는 1938년 1월경까지 수 차례에 걸쳐 야학학생들에게 현 사회제도하에서 농민빈궁의 실상 및 그 원인을 사회주의 이론에 기초하여 설명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는 이 일로 체포되어 1939년 8월 30일 부산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釜山地方法院 晋州支廳, 1939. 8. 30)
- 東亞日報(1939. 5. 9, 8. 26)
- 한국공산주의운동사(이기하) 1409面
- 일제하 농민조합운동 연구(지수걸, 역사비평사) 435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