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남 합천(陜川) 사람이다.
1919년 3월 24일 합천군 묘산면(妙山面)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묘산면 팔심리(八尋里)는 윤씨 일가들이 집성촌을 이루는 동네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윤병재는 윤병석(尹炳奭)·윤병양(尹炳陽)·윤병은(尹炳殷) 등 일가들과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24일로 정하고 이웃 각 동리의 인사들에게 비밀리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동지들을 규합해 갔고, 또한 윤형구(尹炯九) 집에서 거사에 필요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 제작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4일 오전 11시 경, 묘산면사무소에 주민 1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한 뒤, 시위대는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이때 시위대는 연도의 전신주를 절단하여 통신망을 단절시키는 등 시위를 주도 면밀하게 전개하였다.
그러나 뒤늦게 출동한 일본 헌병대와 경찰은 시위대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였다. 만세현장에서 윤병하(尹炳夏)·윤병교(尹炳喬) 등 2명이 순국하고 다수가 부상을 당하는 희생을 치뤄야 했다. 이때 시위대의 선봉에 서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던 윤병재는 일군경에 의해 현장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인해 6월 19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19. 7. 10. 大邱覆審法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釜山·慶南 3·1運動史(3·1同志會, 1979) 49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