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만주에서 민족교육운동에 종사하였다.
평북 선천에서 독립단의 통신연락을 담당하면서, 독립자금을 임시정부에 보내는 일, 평양감옥에서 탈출한 독립지사를 만주로 도피시키는 일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말을 전후하여 간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주요 독립군 부대들이 소련으로 이동한 이후에도, 대한독립단, 광복단, 광복군총영 등이 잔류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 단체들은 효과적인 대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1922년 8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대한통의부가 분열되면서 통의부의 군사조직인 의용군은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제휴하여 1923년 8월, 임시정부 군무부 산하의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로 재편성 되었다.
이와 같은 시기 박신원은 1924년 4월 중순 흥경(興京)에서 동지 27명과 함께 민족교육과 여성권익향상을 목적으로 여자교육회(女子敎育會)를 조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후 만주 관전현(寬甸縣)으로 망명하여 생활하던 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불 속에 던져지는 등 고문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호박꽃 나라사랑(차경수, 1988) 44·47·81∼83面
- 獨立新聞(1921. 1. 27, 1924. 5. 31)
- 민족과 함께 세계와 함께(國家報勳處, 1995) 132∼14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