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10월 전남 (全南) 나주 (羅州) 에서 광주여고보 (光州女高普) 3학년 학생으로서 박기옥 (朴己玉) , 이금자 (李錦子) 등 동료 학생들과 함께 기차 (汽車) 로 통학하던 중 일본인 중학생들이 그녀와 박기옥 (朴己玉) 등 여학생들을 희롱하자 광주고보학생 (光州高普學生) 들과 광주중학교 (光州中學校) 일인 학생 (日人學生) 들이 충돌하여 광주학생운동 (光州學生運動) 의 촉발계기가 되었으며, 그 후 피체 된 학생들의 석방을 주장하며 백지동맹 (白紙同盟) 을 주도함으로써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일경 (日警) 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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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나주(羅州) 사람이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일본인 중학생이 당시 광주여고보에 재학 중이던 이광춘과 박기옥을 희롱하였다. 이로써 발단된 광주고보생과 광주중학생간의 충돌은 광주학생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렇듯 광주학생 운동의 도화선의 한사람이었던 그는 같은 해 11월 3일 광주고보와 광주농업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운동이 전개되자, 솔선하여 광주여고보 학생들을 주도하여 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붙잡혀 가혹한 고문을 받고 석방되었다.
그후 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광주학생들의 시위는 다시 추진되었다. 이무렵 광주학생의 시위소식은 전국으로 퍼져 전국 각처에서 학생시위가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광춘은 광주여고보를 중심으로 다시 학생시위의 계획을 준비해 갔다.
그리하여 1930년 1월 13일 시험시간 중, 돌연 교단으로 뛰어 올라가 붙잡힌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험을 거부하자는 백지동맹을 주도해 갔다. 그는 이 일로 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받고 일경에 붙잡혀 갖은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騎驢隨筆(宋相燾) 398面
- 일제의 침략과 한국독립운동(신한문화사, 1994) 下卷 111·112面
- 大韓獨立抗日鬪爭總史(大韓獨立抗日鬪爭總史編纂委員會) 535面
- 東亞日報(1930. 1. 17)
- 光州學生獨立運動史(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 1974) 54·55·280·282·283·718面
- 朝鮮日報(1930. 1. 15, 1. 17, 1. 19, 1982.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