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
1932년 진주고등보통학교(晉州高等普通學校) 재학 중 비밀결사 교내위원회(校內委員會)를 조직하여 동맹휴학을 주도하고 반일격문을 진주읍내 각처에 살포하였다.
박용규는 1932년 진주고보 3학년 재학 중,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면서 이를 조직적인 운동으로 전개할 뜻을 세우고, 동급생 김환기(金桓璂)·김호배(金琥培)·정성수(丁性洙) 등과 함께 같은 해 10월 비밀결사 교내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매월 3, 13, 23일을 정기모임일로 정하였다.
11월 1일 박용규 등 동지들은 11월 7일 러시아혁명기념일에 맹휴를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스트라이크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거사 당일인 11월 7일 아침 조회 시간에 김호배가 단상에 올라 연설을 하고, 박원지(朴源志)는 "광폭하고 무자비한 일본제국주의 자본가 지주의 충견(忠犬) 스파이를 박멸하자"라는 격문을 작성, 학생들에게 배포하기로 하는 한편, 김환기는 적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박용규 등은 거사 이틀 전인 11월 5일 오후 12시 경, 격문 20∼30여 매를 학교 근처 벽보에 부치는 등 거사계획을 진행시켰으나, 사전에 이를 탐지한 일경에 발각되어 계획대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33년 7월 31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출판법, 가택침입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判決文(1933. 7. 31. 釜山地方法院 晋州支廳)
- 思想月報(1933. 10. 15) 第3卷 第7號 11∼20面
- 韓國共産主義運動史(李起夏) 1411·141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