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영양(英陽) 사람이다.
1906년 경북 영덕(盈德)에서 기의한 신돌석(申乭石) 의진에 가담하여 좌익대장(左翼隊長)으로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는 등 국권을 침탈하였다.
이와 같이 국망(國亡)의 조짐이 심화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신돌석의병부대는 1906년 3월 동생 신우경(申友慶)과 함께 활빈당으로 활동하던 농민 300여 명을 모아 영덕 축산(丑山)에서 기의하였다. 신돌석 의병부대는 의병장 신돌석이 서민출신이었던 관계로 의병진도 평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경진은 이러한 신돌석의병부대의 좌익대장을 맡으며 남으로는 산남의진(山南義陣), 북으로는 김현규 의진, 서로는 유시연(柳時淵)의 의진과 연계하여 일제와 주구배들을 엄히 처단하면서 경북 동북부 일대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1907년 봄에는 백남수(白南壽)·김치헌(金致憲) 등의 장령과 함께 이 지방에 준동하는 일진회(一進會) 세력을 처단하고 지방민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리에 밝은 이점을 이용한 신출귀몰한 유격전술로 일군을 격파하는 등 의세를 떨쳤다. 같은 해 가을 군대해산에 따라 해산군인들이 참전하게 되자 신돌석 의병부대의 군세는 더욱 확장되었고 일제는 현상금까지 내걸며 신돌석의병장의 체포에 광분하였다.
그러던 중 1908년 12월 신돌석의병장이 영덕 눌곡(訥谷)에서 암살당함에 따라, 의진도 해산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盈德郡誌(1981) 610面
- 申乭石將軍實記 11面
- 救國倡義錄(盈德郡) 22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