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60089
성명
한자 朴炫埰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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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년도 1996 훈격 대통령표창
1943.3월 광주사범학교(光州師範學校) 재학 중 무등독서회(無等讀書會)를 조직하여 월 2회의 모임을 통하여 조국독립과 전통역사관 확립에 힘쓰고 연합군 상륙시 행동대원으로 봉기할 것 등을 강령으로 활동하였다 하며, 1944.10월 조직확대에 힘쓰던 동지의 피체로 거사계획이 탄로됨으로써 일경(日警)피체된 바 동 회원(同會員)의 검속처분 기록과 구류로 인한 사고결석 사항에 비추어 약 7월간의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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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영암(靈巖) 사람이다.

1943년 3월 광주사범학교 재학 중 비밀결사 무등독서회(無等讀書會)를 조직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 활동하였다.

1943년 3월 광주사범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현채는 조규학(趙圭學)·옥대호(玉大鎬)·노동훈(魯瞳塤)·안동영(安東泳) 등과 함께 무등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월 2회 모임을 갖고 독립에 대한 의지를 굳혀 가면서 독립운동의 방도를 모색하였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심화되던 상황에서 이들은 민족사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국제정세의 분석에 힘을 기울였다. 이들은 다가올 조국 독립에 대비하여 연합군의 지원방안 및 임시정부의 동향에 귀를 기울이며 구체적 독립운동을 모색해 갔다.

그러나 1944년 10월 조직확대에 힘쓰던 동지가 붙잡히는 바람에 조직이 일경에 발각되었으며, 그들의 거사계획도 탄로나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7개월 간의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광복이 되면서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全羅南道誌(全羅南道誌編纂委員會) 15面
  • 學籍簿(光州敎育大學校)
  • 光州敎育大學 50年史(光州敎育大學 同門會, 1988) 129∼131面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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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박현채 - 전남 영암(靈巖) -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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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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