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나주(羅州) 사람이다.
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을 강제체결하여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당시의 의병봉기는 같은 해 8월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고 참여계층도 유림·농민·포수·해산군인을 비롯하여 상인·광부 등의 평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국민전쟁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송석래는 이와 같은 국가 존망의 상황에서 김태원(金泰元:일명 金準) 의진에 참여하여 중군장으로 활동하였다. 의병장 김태원은 1907년 전남 장성에서 거의한 기삼연(奇參衍) 의병장의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에서 선봉장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특히 같은 해 12월 함평주재소를 습격하여 일인 순사를 사살하였고 추격하는 일군과 수 차례에 걸쳐 접전을 벌여 일군 지휘자 천단 조장(川端 曹長)과 부하들을 사살하는 등 신출귀몰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송석래는 이와 같은 김태원 의진의 중군장으로서 전남 영광(靈光)의 굴수산(屈殊山)에서 일본군 장교 2명을 비롯하여 일본 병졸 수십명을 사살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1908년 1월에는 무동촌(舞童村)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적장 길전승삼랑(吉田勝三郞)을 사살하는 등 나주·영광·광주·함평 등 전남 일대를 누비며 맹위를 떨쳤다. 그러나 일본군의 집요한 추격을 받고 마침내 광주 어등산(魚登山) 전투에서 김태원 의병장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342面
- 通文(羅州鄕校, 1955)
- 湖南節義錄(湖南節義錄刊所, 1964) 第8卷 87面
- 羅州郡人物誌(羅州郡誌編纂委員會, 1981) 125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