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남 신흥(新興) 사람이다.
1939년 5월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와 소위 황민화정책(皇民化政策)을 비판하였고, 1943년 12월 일제의 정책을 비판하는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9년 5월 28일 일본에서 의원들로 구성된 전국경제조사시찰단(全國經濟調査視察團)이 함흥에 도착하자, 이들을 위한 환영회에 신태익은 함흥변호사회 회장의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환영식장에서 대부분의 연설자들은 전쟁의 승리를 다짐하는 한편, 한국인도 황국신민화 운동에 감격하고 성전(聖戰)에 기꺼이 참가하고 있다는 등의 왜곡된 연설을 하였다. 이때 연설자로 나선 신태익은 일본의 동화정책(同化政策)의 부당성과 한글사용금지, 창씨개명 등의 일제 식민정책을 비판하는 한편, 지원병제도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나아가 한국인이 일본에 동화(同化)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망상(妄想)에 불과하다고 연설하였다.
그는 이 일로 일경에 붙잡혀, 이해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년을 받았으나, 공소하여 같은 해 7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로 감형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는 출옥 후 또 다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정책의 부당함을 공격하다가, 1943년 다시 일경에 붙잡혀, 소위 육해군형법 등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후 1949년 반민특위(反民特委) 제1부 재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親日派群像(林鍾國) 246面
- 新興郡誌(新興郡誌編纂委員會, 1969) 321·322面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別集 第4輯 574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39. 6. 25, 7. 1, 7. 4, 7. 8, 7. 19, 7. 26, 9. 19, 9. 26)
- 韓國日報(1982. 5月) 長官列傳 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