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5월 전남 (全南) 화순 (和順) 에서 고려공산청년회 (高麗共産靑年會) 전남지부 (全南支部) 에 가입하여 화순 (和順) 야체이카를 조직하고 그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1928년 8월 5일 광주 (光州) 에서 전남 (全南) 소년연맹 (少年聯盟) 창립 대회 (創立大會) 를 개최하고자 무등산 (無等山) 증심사 (證心寺) 에서 수십명과 집회를 하던 중 체포 (逮捕) 되어 금고 (禁錮) 4월을 받았고, 1929년 다시 고려공산청년회 사건 (高麗共産靑年會事件) 으로 체포 (逮捕) 되어 징역 1년을 받아 옥고 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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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23년 3월 서울에서 전조선청년당대회(全朝鮮靑年黨大會) 창립총회가 열릴 때 전남 화순 대표로 참가하면서, 청년운동을 통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26년 사상단체 육성회(六星會)와 화순농민조합(和順農民組合)에 참가하면서 사회주의운동을 하였다. 1927년 5월 8일경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화순면(和順面) 광덕리(廣德里) 화순공원(和順公園)에서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전라남도 지부 책임비서 김재명(金在明)의 권유로 동 단체에 가입하여 화순야체이카에서 활동했다.
1928년 8월 5일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 소년회관에서 전라남도소년연맹(全羅南道少年聯盟) 창립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무등산 증심사에서 수십 명과 집회를 하던 중 체포되어 동년 9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금고 4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활동하다가 1929년 1월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어 동년 7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광주를 무대로 활동하던 중 1932년 5월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現代史資料(姜德相, 1971) 제29권 104면
- 韓國共産主義運動史(金俊燁·金昌順, 1986) 제2권 114∼117면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朝鮮日報(1929. 6. 18·6. 21·6. 22·7. 8·7. 9·7. 16·7. 21)
- 中外日報(1929. 6. 9·7. 10)
- 東亞日報(1928. 9. 22, 1929. 1. 2)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1928. 9. 28)
- 한국사회주의인명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455면
- 韓國靑年運動史(鮮于基聖, 1973) 34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