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칠곡(漆谷) 사람이다.
미국 본토로 이주하여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지방회의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미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30세경에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나 다시 귀향한 그는 고향인 칠곡군 약목(若木)에서 독락당의 학감을 역임하였다. 그후 1917년 다시 미주로 건너가 와이오밍주에 정착하고 대한인국민회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에 나섰다.
대한인국민회는 1909년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합성협회(合成協會)가 발전적으로 통합한 국민회(國民會)가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를 흡수 통합함으로써 탄생한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였다. 대한인국민회는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중앙총회 아래 북미·하와이·멕시코·시베리아·만주 등지에 지방 총회를 설치하였으며, 다시 지방총회 아래 116개의 지방회가 조직되어 있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미주 지역 한인사회의 결집을 도모하면서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리하여 1920년 임시정부 산하 구미위원부의 슈퍼리오 지방총무로 선임되어 애국공채금을 수합하여 구미위원부에 송금하는 등 활동하였다.
한편 그는 1921년 대한인국민회 와이오밍지방회의 회장에 선임되어 지역 교민사회의 발전과 독립운동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고려국민당(高麗國民黨)에도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채무관계로 피살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新韓民報(1921. 1. 20, 1932. 9. 15, 9. 29, 10. 27, 1933. 2. 16, 3. 16)
- 梨花莊 雩南 李承晩 文書(연세대 現代韓國學硏究所) 第10卷 214·216·244·315·389·427·48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