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8년 3월 28일 중국 봉천성(奉天省) 집안현(輯安縣)에 거주하며 국민부(國民府)에 가입하였다고 한다. 다만, 국민부가 1929년 4월 정의부(正義府)와 신민부(新民府)·참의부(參議府) 대표가 모여 결성되었다는 사실과 집안현이 참의부의 세력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초기에는 참의부에 가입한 것으로 여겨진다. 국민부 집안현 지방 집행위원과 십가장 등으로 활동하며 의무금 모집에 힘을 기울였다.
1932년 3월 만주국(滿洲國) 건국 이후 일제의 중국 만주 지역 한인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진행되었다. 이때 원종삼(元宗三)·김한성(金漢聖)·송태화(宋泰華)·김억명(金億明) 등과 함께 일제 봉천총영사관(奉天總領事館) 경찰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12월 1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을 이유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옥고를 치르던 중인 1934년 징역 1년 8월 22일로 감형되었고, 같은 해 5월 19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32. 4. 10, 12. 12)
- 매일신보(每日申報)(1932. 12. 1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10집 6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