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13년경 가족들과 함께 중국 봉천성 관전현 소황구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20년 음력 10월 김낙선(金洛善)・이덕서(李德瑞)와 함께 국내로 잠입하여 평안북도 벽동군과 창성군 등지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관전현 소황구 지역 한인의 백가장(百家長)으로 활동하는 한편, 대한통의부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남만주지역 독립단체들의 통합을 위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과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등이 남만한족통일회의를 거쳐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이다. 1924년 음력 7월경까지 관전현 소황구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데 힘썼다.
이러한 활동을 탐지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6년 4월 22일 신의주지방법원 초산지청에서 ‘강도’ 및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929년 4월 5일 신의주형무소에서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202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신의주지방법원 초산지청 : 1926.4.22)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