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전남 구례(求禮) 사람이다.
1926년말 항일학생결사인 성진회(醒進會)가 조직된 후 광주학생의 항일의식은 고조되었는데 도중에 회원중 이반자가 생겨 1927년 3월에 해체되었다. 그러나 동회의 해체는 형식상이었을 뿐으로 주동학생들의 활동은 각 학교 단위로 계속되어 나갔다.
그리하여 광주농업학교에서는 주당석(朱唐錫)·유치오(兪致五)의 주도하에 성진회의 사업을 수행하였는데 이들이 1929년 3월에 졸업하게 되자 그는 김남철(金南哲)·이영범(李翎範) 등과 함께 뒤를 이어 교내 조직을 3개반으로 나누고 각기 반책임자가 되어 사회과학연구 등을 통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러던 중 동년 6월, 동경에서 돌아온 장재성(張載性)이 성진회 해체이후 이제까지 분산적으로 지속하였던 투쟁방법에 대하여 조직적 활동을 주장하자 그를 비롯한 광주내 각학교 학생지도자들이 김기권(金基權)의 집에 모여 〈독서회중앙본부〉를 조직하였다. 이때 그는 동본부의 출판부 위원으로 선임되어 각종 인쇄물의 인쇄 및 배포를 담당하였다.
한편 동본부는 결의사항으로 부원의 1주 1회 회합, 각학교에 하부조직인 독서회를 조직할 것, 소비조합의 설치 등을 정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동년 6울에 김남철, 최정기(崔貞基) 등 광주농고생 20여명과 함께 무등산에서 회합하고 광주농고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부서를 정하였는데 그는 동회의 대표겸 재정부 위원의 일을 맡았다.
또한 동회는 회원을 4개조로 나누어 각기 책임자를 두고 조별로 연구활동을 하였는데 그는 조책임자로도 활동하였다.
그리고 앞서 동본부에서 설치하기로 결의한 소비조합 조직에도 관여하여 동년 6월부터 장제성 및 동본부 임원들과 계획, 의논하여 동년 9월에 조합을 설치하였다.
동조합의 목적은 독서회원의 친목단결 및 재정지원활동에 있었는데 그 운영 자본금은 임원, 각학교 독서회 등이 중심이 되어 출자하였다.
이렇게 독서회 활동을 통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던 중,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광주농고생의 가두시위에 앞장서서 활약하였다.
동월 10일에는 오쾌일(吳快一)·김남철(金南哲)·김홍남(金鴻南) 등과 함께 박기석(朴紀錫)의 집에 모여 제2차시위를 계획하고 광주고보·농고·사범 3개 학교가 일제히 거사하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전날인 11일 밤에는 박기석의 집에서 오쾌일·이형우(李亨雨) 등 동지들과 함께 학생들에게 배포할 1000여매의 격문을 직접 살포하였다.
그 후 일경에 붙잡혀 소위 광주학생독립만세시위 운동에 대하여 징역 8월을 선고받았으며, 광주농고에서 퇴학을 당했다.
또한 독서회 운동에 대해서는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으며 1931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판결문(1930. 2. 26 광주지방법원)
- 판결문(1931. 6. 13 대구복심법원)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7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494·495·496·500면
- 판결문(1930. 10. 18 광주지방법원)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17·719·722·72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40·247·250·264·266·1611∼1624·1633∼1654·1667∼17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