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9권(2024년 발간)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과 학생들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는 전국으로 빠르게 확대되었다.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경험한 이갑성(李甲成)은 이러한 소식을 경상북도 대구부에 전달했다.
그리하여 3월 8일 오후 3시 시장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계성학교와 대구고등보통학교(大邱高等普通學校) 등의 학생들이 합류했다. 당시 계성학교에 재학하던 고창언도 만세운동의 취지에 공감하고 시위대에 합류하여 만세를 외쳤다. 그로 인하여 1919년 3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971) 제5집 1264~12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