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함경북도(咸鏡北道) 경성군(鏡城郡) 주남면(朱南面) 출신이다. 주남사립보통학교(朱南私立普通學校) 졸업 후 1929년 중국 북간도 용정촌(龍井村) 사립대성중학교(私立大成中學校) 제2학년으로 입학했다. 같은 해 7월 중순 중국 용정촌 제4구에서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에 가입하였다.
1930년 만주지역의 한인 사회주의자 노선이 급진적인 대중투쟁 노선으로 전환하면서 이른바 ‘5‧30간도봉기’가 일어났다. 1930년 6월부터 간도 지역의 많은 한인 사회주의자들이 체포되었다. 그에 따라 지길남도 간도총영사관 경찰서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취조와 재판 끝에 1931년 12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출옥 이후인 1933년 10월 중순 함경북도 경성지방의 혁명 자원을 획득하고자 경성군 주남면에서 적색농민조합 조직, 동지 획득 등을 위한 열성자대회를 개최하였다. 1934년 1월 노동운동을 위해 나진(羅津)의 만철공사장(滿鐵工事場)으로 이동했다. 같은 해 4월 5일 나진항 조산의(趙山義) 집에서 김귀남(金貴南)‧최삼갑(崔三甲)‧김시현(金時賢)과 모여 적색노동조합조직협의회를 개최하였다.
같은 해 9월 초순 청진부(淸津府)에서 현춘봉(玄春逢)을 만나 조선공산주의자동맹에 가입하였다. 그 결과 체포되어 청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강도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31. 12. 26)
- 예심종결서(경성지방법원 : 1931. 2. 3)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6. 22, 8. 2, 1931. 2. 4, 12. 6, 12. 20, 12. 27, 1936. 10. 24)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6. 23, 8.2)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6. 27, 1931. 2. 5, 2. 8, 2. 13, 2. 15, 9. 30, 12. 3, 12. 27, 1936. 10. 14, 10. 21)
- 동아일보(東亞日報)(1931. 2. 5, 2. 6, 2. 13, 2. 15, 7. 5, 12. 27, 1936. 5. 28)
- 경성일보(京城日報)(1931. 12. 20, 12. 27)
- 중앙일보(中央日報)(1931. 12. 27)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사상월보(조선총독부검사국, 1932. 7. 15) 제2권 제4호 79면
- 사상휘보(조선총독부검사국, 1936. 6. 15) 제7호 246~279면
- 경성지방법원 형사사건기록(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 제989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