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39년 1월 전주 신흥학교(新興學校)를 졸업한 후, 고베중앙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고베로 건너왔다. 이때 고베중앙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만제(金萬濟)・김영창(金永昌) 등과 교우하며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 등의 정책으로 인해 한국인의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이 상실되어 간다고 분석했다. 이에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중일전쟁 등으로 인해 일제의 국력이 쇠퇴하여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이 승리할 것이라고 시국을 분석하였다. 이를 기회로 해외의 독립운동 단체들과 서로 호응하여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1941년 12월 7일 일제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12월 8일 자신의 장녀 출생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친목회를 개최해 시국을 논의하고 독립운동 실행 방안을 협의했다.
1941년 12월 9일 고베에서 체포되었고 1942년 12월 3일 고베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소화특고탄압사(明石博隆・松浦總三, 1975) 7권 305~307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4(2)권 996, 1203~1205면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2019) 일본편13 1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