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38년 3월 서울의 감리교회신학교를 졸업하고 5월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면(揷橋面) 삽교교회(揷橋敎會)의 감리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5월 예산군 예산읍(禮山邑) 예산교회로 전근되었고 1940년 5월 서울 서강교회, 1941년 4월 아현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39년 6월 예산교회에서 신자인 윤영원(尹榮遠)·최경용(崔庚容)·이민구(李民求) 등과 뜻을 함께하여 독립운동이 목적인 비밀결사인 예농속회를 조직했다. 강령으로 첫째 조선민족정신을 잊지 말 것, 둘째 조선어를 연구‧사용할 것, 셋째 조선민족의 단결을 굳게 할 것, 넷째 조선민족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민족의식을 높일 것 등을 결의했다.
김희운은 이 비밀결사의 지도를 담당했다. 그는 중일전쟁이 장기화하면 일제가 패배하여 독립이 가능해 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에 따라 일제의 징병제도를 비판하고 독립운동의 방안을 논의하는 등 비밀결사의 활동을 주도했다. 그러다가 1942년 7월 8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경성지방법원 형사사건기록(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 제419권
- 경성지방법원 형사사건기록(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 제420권
- 경성지방법원 형사사건기록(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 제42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