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경상북도 선산군에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대구사범학교에 1929년 6월 입학하여 1934년 3월 졸업하였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당시 독립운동가이자 교사인 현준혁(玄俊赫)의 지도를 받아 신사상을 수용하였다. 아울러 일본인과 한국인 관리 사이의 차별에 대항하여 민족사상을 지녔다.
같은 해 전라남도(全羅南道) 구례군(求禮郡) 광의면(光義面) 광의공립심상소학교(光義公立尋常小學校)의 훈도를 역임했다. 1936년 8월경부터 경상북도 선산군에서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재학 중인 장재성(張在星) 등과 협의하여 한국의 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잡지 등의 발행을 계획하였다.
1938년 3월 서울에서 보통학교 동창생으로 영화 제작자인 신정균(申敬均)과 함께 신사상을 선전하는 영화의 제작을 협의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 민족의 독립사상을 깨우치려 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1938년 6월 체포되어 1939년 5월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혐의로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 : 1939. 5. 19)
- 조선일보(朝鮮日報)(1939. 5. 21)
- 사상휘보(思想彙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9) 제18호 24면
- 최근의 조선 치안 상황 1933년‧1938년(엄남당서점, 1966) 337면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