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평안북도(平安北道) 의주군(義州郡) 출신으로 학생운동과 일본 지역 독립운동 분야에서 활동했다. 1930년 1월 8일 신의주공립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하면서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는 동맹휴교를 주도하여 퇴학을 당했다. 같은 해 3월 일본 도쿄(東京)에 와서 입교중학교 4학년에 편입했다.
1931년 1월 중순 실업자동맹소압소개반(失業者同盟巢鴨紹介班)에 가입하고 12월 전협(全協) 일본토목건축노동조합 도쿄지부 성북지구(城北地區) 소압소개소(巢鴨紹介所) 분회(分會) 위원‧청년부 책임자가 되었다. 1932년 1월 도쿄부(東京府)에서 일본공산청년동맹(日本共産靑年同盟)에 가입하여 북부지구 가두세포에 소속되었다.
1932년 2월 소압(巢鴨)‧고전(高田) 직업소개소, 시천(市川)‧전전(前田) 공장에서 일본공산청년동맹의 기관지인 『무산청년(無産靑年)』 배포 책임자로 4월까지 약 80부를 배포하였다. 북부지구 가두세포 지도부원이 되어 도쿄부에서 동지 1명과 지도부 회의를 개최하여 동맹원 지도 방법, 무산청년 독자 획득 방법 그리고 메이데이 투쟁방침 등에 대하여 협의하였다.
같은 해 3월에 일본공산당에 가입하고 북부지구 가두세포에 소속되어 직업소개소와 시천‧전전 두 공장의 책임자가 되었다. 같은 해 4월 중 장기준 외 3명에게 일본공산당 가입을 권유하여 가입시켰다. 4월 20일 김규일 집에서 개최된 당원대회에 출석하여 메이데이 투쟁방침 등에 대해 협의하였다.
그리고 북부지구 가두세포 제1반 책임자로 선임되어 기관지 『실업자(失業者)의 성(聲)』을 편집 발행하였다. 일본공산당 간부 사노 마나부(佐野學)를 탈출시키려는 계획이 발각되면서, 1932년 7월 25일 도쿄 경시청에 의해 체포되었다. 1933년 7월 12일 동경재판소(東京裁判所)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고, 1934년 7월 5일 동경공소원(東京控訴院)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토요타마형무소(豊多麻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예심청구서(동경지법재판소 검사국 : 1932. 10. 11)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1. 9, 1. 10, 1. 12, 2. 21)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1. 9, 1. 11)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1. 9, 1. 10, 1. 12)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5) 제2권(1) 440, 447, 567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제3권(2) 866면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615~6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