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평안북도(平安北道) 선천군(宣川郡) 출신으로 1922년 중국 장춘현(長春縣)으로 이주하였다. 1926년 음력 1월 중국 길림성(吉林省) 성내에서 백남준의 소개로 정의부(正義府) 제1중대장 정이형(鄭伊衡)을 만나 정의부에 합류했다.
같은 해 3월 20일 정의부 의용군 제1중대 제3소대 소대장 정문빈(鄭文彬) 등 5명과 함께 길림현(吉林縣) 신안둔(新安屯)을 출발하여 장춘으로 갔다. 박경순은 정문빈과 장춘현(長春縣)의 삼도구(三道溝) 이용운의 집에 숙박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했다. 같은 해 7월 제1중대장 김형명의 명령을 받아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해 장춘으로 이동했다.
정의부‧신민부‧참의부가 1929년 4월에 통합하여 국민부(國民府)가 설립되었고 12월 20일 민족유일당조직동맹이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으로 개편되었다. 조선혁명당은 ‘이당치국(以黨治國)’의 원칙에 따라 국민부와 조선혁명군을 지도하였다. 박경순은 국민부에 가입하고 같은 해 9월부터 국민부 예하 조선혁명군의 장지호와 함께 간도 돈화(敦化) 방면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1930년 3월에 국민부 조선혁명군 제2중대 부관이 되었고 7월 초순에는 제9중대장에 취임하였다.
1930년 8월 조선혁명군과 국민부를 탈퇴한 이종락(李鍾洛) 등 일부 급진적 민족주의자들이 길림성(吉林省) 도뢰소(陶賴昭)에서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吉江省指揮部)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11월 조선혁명군사령부(朝鮮革命軍司令部)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31년 3월 세화군(世火軍), 5월에는 동방혁명군(東方革命軍)으로 개칭되었다.
조선혁명군사령부의 임원진은 총지휘 이종락‧정치부 책임 안붕(安鵬)‧군사부 책임 김광렬(金光烈)‧비서부 책임 최창걸(崔昌杰)‧선전부 책임 김원근(金元根) 등이었다. 박경순도 조선혁명군사령부 소속으로 군영 폭파를 시도하다가 1931년 1월 28일 이종락 등 4명과 함께 장춘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2년 12월 21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살인‧강도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만주지역(滿洲地域) 본방인재류금지관계잡건(本邦人在留禁止關係雜件)(국가보훈처, 2009) 220~222면
- 조선일보(朝鮮日報)(1931. 2. 4, 3. 3, 3. 4, 4. 11, 1932. 12. 16)
- 동아일보(東亞日報)(1931. 3. 30, 4. 22, 1932. 5. 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387~389면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