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함경북도(咸鏡北道) 회령군(會寧郡) 창두면(昌斗面)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정두영(鄭斗永)‧장일복(張日福)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선전했다. 이후 중국 간도에서 대한국민회에 가입했다.
대한국민회는 1919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총회 산하에 연길‧화룡(和龍)‧왕청(汪淸) 3개 현(縣)을 중부‧동부‧서부‧남부‧북부 등 5개 구역으로 나누어 지방총회를 설치하였다. 김규형은 서부지방총회 소속의 모연대원(募捐隊員)이 되어 군자금을 모집했다.
김규형은 1919년 음력 8월경 박춘근(朴春根) 등과 함께 화룡현(和龍縣) 명신사(明信社) 복동(福洞)에서 독립운동자금 86원을 모집하였다. 이후 1920년 3월까지 화룡현에서 독립운동자금 1,233원을 모집했다. 이러한 활동 끝에 1922년 1월 11일 일제에 체포되었다. 1922년 5월 13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강도죄’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원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6년 12월 10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22. 5. 15)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해외의한국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2009) 제34권 104∼10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