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사립보성고등보통학교(私立普成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한 후 1936년 4월 일본으로 건너가 사립중앙대학(私立中央大學) 예과(豫科)에 입학한 후 1938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사립중앙대학 법학부에 진학하였고, 이때 일제가 선전하는 내선일체(內鮮一體)는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독립을 희망하게 되었다.
1941년 3월 사립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42년 6월 도쿄에 위치한 부국징병보험상호회사(富國徵兵保險相互會社) 서기보로 약 7개월간 근무한 후, 1943년 10월 25일 한국으로 돌아와 경성세무서 고원으로 일하였다. 일본에 머물던 1942년 4월 하순 무렵부터 1943년 3월 초순 무렵까지 5~6회에 걸쳐 방본홍벽(邦本鴻壁)과 함께 사립중앙대학 교정과 자신의 하숙집 등에서 조선 민족 문제에 관하여 의견을 교환하고, 조선 민족에 관하여 서로 협력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때 “미일전쟁에서 일본이 패배할 것이므로, 이때가 조선독립의 기회”라고 협의하는 한편, “대동아전쟁에서 일본은 패배할 것이며 이때는 조선독립의 기회이고, 독일이 패배하였을 때는 소련 병력은 극동을 향해 온다”며 “조선 민족의 취할 길은 오로지 자유 해방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1944년 4월 27일 일제 경찰의 검속에 의해 체포되어, 같은 해 12월 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을 이유로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44. 12. 16)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