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9년 11월 전라남도(全羅南道) 광주군(光州郡)에서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光州公立高等普通學校) 학생을 비롯한 중등학교 학생들이 시위를 벌여 많은 학생들이 검거되었다. 이에 항거하여 전국에서 광주학생운동 동조시위와 동맹휴학이 전개되었다.
평안남도 평양부의 숭실전문학교 농과(農科)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윤제만은 1930년 1월 18일 학우인 김형두(金炯斗)·김봉덕(金鳳德)·강기순(康基淳) 등과 격문 배포를 협의하였다. 이들은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학생들의 궐기를 촉구하는 격문을 배포하기로 계획하였다. 평양부 남문정(南門町)의 격물학당(格物學堂)에서 김봉덕이 구입한 백지로 격문 250여 매를 인쇄하였다. 「3천 평양 남녀학생 제군에게」라는 제목의 격문에는 “3천 5백만 백의인(白衣人)을 위해 철권을 힘차게 올려라”라는 내용을 기재하였다.
이튿날 1월 19일 이 격문을 숭실전문학교를 비롯하여 평양공립고등보통학교(平壤公立高等普通學校), 평양사범학교(平壤師範學校), 광성고등보통학교(光成高等普通學校) 등 8개 학교에 살포하였다. 이에 놀란 일제 경찰은 버스까지 동원하여 각 학교와 시내를 엄중히 경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월 20일 숭인학교(崇仁學校) 학생들이 교실에서 만세를 불렀다. 1월 21일에는 숭실전문학교를 비롯한 남녀 10개 학교가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윤제만은 이일로 체포되어 1930년 3월 13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출판법 위반’으로 금고 2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1. 22, 2. 8, 2. 26, 3. 13, 3. 14)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2. 6, 2. 16, 2. 26, 3. 12, 3. 14)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2. 6, 2. 19, 2. 22, 3. 12, 3. 13, 3. 14, 3. 19)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2. 7, 3. 14)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1) 제1권 제6호 545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614면
- 숭실대학교 100년사-평양숭실편(숭실대학교, 1997) 478~4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