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9년 11월 전라남도(全羅南道) 광주군(光州郡)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호응하여 전국의 학생들이 동조시위와 동맹휴학으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1월 20일 평안남도 평양부의 숭실전문학교 학생 김형두(金炯斗)·강기순(康基淳) 등이 시위를 촉구하는 격문을 숭실전문학교를 비롯한 각 학교에 살포하였다. 이에 고무되어 1월 21일 오전 10시경 숭실중학교 학생 360명이 교정에서 만세를 외치자 숭실전문학교 학생 150여 명도 만세를 외치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였다. 경계 중인 경찰의 저지를 뚫고 수십 명이 교외로 진출하여 평양고등보통학교(平壤高等普通學校) 등 인근지역 학교의 학생들에게 시위참여를 촉구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보통학교를 포함한 10개의 남녀 각급 학교 학생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이튿날 22일에도 만세시위는 계속되었다. 숭실전문학교와 숭실중학교 학생들이 인근 각 학교로 흩어져 시위운동을 촉구하는 등 활동하였다. 숭의여학교(崇義女學校) 학생들은 숭실전문학교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와 시위참여를 촉구하자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호응하였다. 광성보통학교(光成普通學校) 학생들은 경찰에 연행 중이던 숭실전문학교와 숭실중학교 학생들의 격려에 자극되어 만세를 부르며 교외 진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날 12개 학교가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숭실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태기는 이러한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박태기는 경찰의 조사를 받은 후 검찰에 불구속 송치되어 2월 26일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1. 22, 2. 10, 2. 14, 2. 16, 2. 21, 2. 25)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1. 22,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