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9년 11월 전라남도(全羅南道) 광주군(光州郡)에서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光州公立高等普通學校) 학생을 비롯한 중등학교 학생들이 시위를 벌여 많은 학생들이 검거되었다. 이러한 일제의 조치에 항거하여 전국에서 광주학생운동 동조 시위가 전개되었다. 1930년 1월 개학과 더불어 평안남도 평양에서도 시위를 촉구하는 격문이 각 학교에 배포되는 등 동조 시위가 확대되었다.
1월 21일 숭실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상규는 36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아침 조회 후 교정에서 만세를 외치고 교문 밖으로 진출하였다. 이에 숭실전문학교(崇實專門學校) 학생들도 시위에 동참하였다. 이들은 인근의 광성고등보통학교(光成高等普通學校), 평양공립고등보통학교(平壤公立高等普通學校), 숭의여학교(崇義女學校) 앞에서 시위 참여를 촉구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각 학교 학생들도 만세를 외치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였다.
이튿날 1월 22일 아침에도 김상규는 숭실중학교 학생들과 시위운동을 계속하였다. 학생들은 애국가를 합창하고 유리창을 파괴하는 등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또한 인근 각 학교로 흩어져 시위 동참을 호소하였다. 이날 평양 시내 14개의 각급 학교가 시위 운동에 동참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고초를 겪고 2월 24일 기소유예되었다.
이후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이던 1932년 평양에서 사회주의 비밀결사 혁진회를 조직하여 공장부·학생부·탄광부·농민부 등 4부를 설치하고 최고지도 책임자에 선임되었다. 강서군(江西郡)·용강군(龍岡郡)·곽산군(郭山郡) 등지로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동지를 규합하였다. 학생·갱부·농민·직공 등을 동지로 획득하여 야체이카를 결성하는 등 활동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35년 3월 9일 면소 방면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2. 16, 2. 25, 2. 27, 1934. 11. 11, 1935. 4. 27, 4. 28, 6. 24, 8. 17, 8. 19, 8. 20, 8. 24(호외))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2. 16)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1. 22, 3. 2, 1933. 10. 20)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5. 8. 24)
- 매일신보(每日申報)(1935. 8. 24)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사상(思想)에 관한 정보(情報)(7)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