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평안북도(平安北道) 정주군(定州郡) 출신으로 1930년 봄 일본 도쿄(東京)로 가서 신문을 배달하며 공부했다. 1932년경부터 사상 서적을 탐독하며 계급의식을 자각했고 1939년 3월 중앙경제신보사(中央經濟新報社) 견습 기자로 고용되었다.
1938년 11월 손호주(孫鎬周)와 도쿄시 하곡구(下谷區) 용천사정(龍泉寺町) 찻집에서 사회운동을 논의하였다. 당시 손호주를 비롯하여 전라남도(全羅南道) 광주(光州) 출신 박종보(朴鍾譜)‧양회총(梁會鏦)‧김영렬(金永烈)‧조기철(曺基鐵) 등이 조직한 친우회(親友會)를 개조하고자 했다. 조선의 사회제도에 대한 연구와 계급의식 자각이 목적이었다.
1939년 1월 15일에는 영목무웅(鈴木武雄) 집에서 새로운 사상을 실현할 비밀결사인 ‘레빗(Rabbit) 구락부’를 조직했다. 같은 해 3월까지 동료들과 독립운동 방침에 관하여 협의하는 등 비밀결사 활동 끝에 일제에 체포되었다. 1940년 2월 5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 1940. 2. 5)
- 조선일보(朝鮮日報)(1939. 12. 11)
- 동아일보(東亞日報)(1939. 12. 12)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