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전국의 의병들은 항일투쟁의 기치를 내걸고 의병운동을 전개했다.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청송‧영일을 중심으로 정용기(鄭鏞基)‧정환직(鄭煥直) 의병장이 산남의진을 이끌었다. 박동림은 이러한 산남의진에 합류하여 종사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가 일본에 의해 강제 해산당하면서 많은 해산 군인이 의병부대에 투신했다. 그 결과 의병의 훈련과 장비가 크게 향상되어 의병운동이 정규군 간의 전투인 의병 전쟁의 단계로 진입했다.
그 과정에서 정용기와 정환직 등이 순국하자 최세윤(崔世允)이 산남의진을 이끌었다. 박동림도 이어서 최세윤 의병부대에 합류했다. 일제 헌병대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 임무를 수행하다가 1908년 음력 3월 초 일본군에게 피살당하여 순국했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산남창의지(山南倡義誌)(1946) 하권 42∼43면
- 산남의진유사(山南義陣有史)(산남의진유사간행위원회, 1972) 460면
- 산남의진발상기념비(포항, 1988)
- 화천지수의 충절을 지킨 정환직‧정용기 양세 의병장(권영배, 2017) 15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