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충청북도(忠淸北道) 영춘(永春) 출신으로 1909년 2월 26일 윤용구(尹龍九) 의진에서 부하가 되어 활동했다. 3월 19일 경상북도 순흥군 미륵(彌勒)에서 윤용구 등 의병 27명과 함께 일본 헌병대를 상대로 교전을 전개했다. 이 전투에서 패한 후 피신하였다가 순흥군 단산면(丹山面) 도화동(桃花洞)에서 헌병에게 체포됐다.
장팔용은 1909년 4월 14일 청주구재판소(淸州區裁判所)에서 이른바 ‘폭동’ 죄명으로 태 80도를 선고받고 태형의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청주구재판소:1909. 4. 14)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