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되자,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였다. 의병들은 일본군과 직접 교전하거나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親日走狗輩)를 처단하는 활동을 통하여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시기에 권학동은 한용수(韓龍守) 등 20여 명과 함께 이무산(李茂山) 의진에서 1909년부터 활동하였다. 이무산은 1907년에 의병을 일으킨 후 1909년 11월 붙잡힐 때까지 3백여 명의 군사를 인솔하고 강원도(江原道) 영월(寧越)·충청북도(忠淸北道) 영춘(永春)·단양(丹陽)·경상북도 영천·풍기(豊基)·순흥(順興)·예천(醴泉)·상주군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밀정을 처단하였다. 이무산이 체포되자 권학동은 의병장 한명만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한명만 의진은 1910년 가을까지 안동·예천·영천·풍기 등 경상북도 북부지역에서 군수품을 수집하고 일본인과 친일배들을 처단하는 의병활동을 전개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재판소:1910. 11. 9)
- 폭도(暴徒)에 관(關)한 편책(編冊)(경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