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평안북도(平安北道) 구성군(龜城郡) 출신으로 출생 직후 아버지와 함께 중국 만주로 이주한 후, 중국 환인현(桓仁縣)과 관전현(寬甸縣) 등지에서 생활하였다. 1935년 2월 13일(음력 1월 10일) 경 조선혁명군 제3사(第三師) 제7중대 소대장 김광산(金光山)의 자택에서 한성국(韓成國)의 권유에 따라 조선혁명군에 가입하였다.
관전현과 환인현·집안현(輯安縣) 등지에서 무등병으로 보초 근무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5년 조선혁명군 정무원 비서과장이었던 윤영배(尹永配)와 차종로(車宗路)·김용봉(金龍奉)·신태형(申泰亨)·전례호(全禮浩) 등과 함께 군자금 3,000여 원을 모집하였다.
1936년 4월 20일 병으로 휴가를 얻어 국내로 들어와 치료하던 중, 12월 4일 평안북도(平安北道) 벽동군(碧潼郡)의 벽동경찰서(碧潼警察署)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37년 12월 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김천소년형무소(金泉少年刑務所)로 이감되었다. 이후 옥고를 치르고 1939년 10월 7일 가출옥한 후, 같은 해 12월 3일 정식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의주지방법원판결초본(新義州地方法院判決抄本)(신의주지방법원:1937. 12. 3)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가출옥(假出獄)의 건(件) 구신(具申)(신의주형무소장:1939. 9. 29)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조선일보(朝鮮日報)(1936. 12. 17, 1937. 7. 10, 12. 10)
- 동아일보(東亞日報)(1937. 7. 9,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