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안창호(安昌浩)와 이혜련(李惠連)의 장남으로 1905년 3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1912년 소학교에 입학하였고, 1916년 클래어몬트 유년하기강습소에서 제1반 우등생으로 뽑혀 연설을 하였다. 1922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폴리테크닉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34년경 남가주대학(University Southern California) 무역과(Foreign Commerce)에 다니며, 코스모폴리탄 클럽의 회장과 국제관계 대학 위원회의 의장을 맡았다.
1928년 한인 2세들의 단체인 2.8클럽의 사교부장을 맡았다. 1932년 2월 대한인국민회 창립기념식에서 준비위원을 맡았으며, 2월 26일에는 로스앤젤레스 대한인국민회 청년부를 조직하였을 때 사교부 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2년 아버지 안창호가 일본영사관에 체포되었을 때,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미국 영화계에서 1938년 12월 11일 할리우드 영화예술가조합 주최로 ‘일화배척 선전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안필립은 일본을 배척하는 강개한 연설을 하였다. 1940년 10월 대한인국민회 중앙상무위원회에서 한국광복군 성립 축하식 및 한미친우회를 조직하기 위한 준비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되어, 광복군 축하식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일제가 진주만을 공격한 이후 1941년 12월 미국 국방에 협조하기 위한 자원자로 나섰다.
1942년 3월 1일 로스앤젤레스 박람공원에서 제23주년 3.1독립선언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거행되었다. 3.1절 제2부 독립기념식에서 안필립은 영문으로 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최초로 한인경위대가 편성된 이후인 1942년 3월 27일 퍼싱스퀘어(Pershing Square)에 있는 빅토리하우스(Victory House)에서 거행되었는데, 이 행사에서 안필립이 캘리포니아 주경위군에 소속된 한인경위대(韓人警衛隊)를 소개하였다. 3월 28일 미국 재무부 국방공채발매국에서 ‘한국의 날’이 지정되자, 국방공채 발매를 촉진시키기 위한 연설을 하였다.
1936년 영화배우로 데뷔하여, 1936년부터 1946년까지 110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1978년 2월 28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新韓民報)(1919. 3. 6, 1921. 10. 27, 1928. 4. 5, 1929. 2. 7, 1929. 9. 12, 1932. 1. 14, 3. 3, 1936. 5. 28, 1938. 12. 8, 12. 15, 12. 22, 1939. 2. 9, 7. 27, 12. 28, 1940. 10. 17, 10. 24, 1941. 12. 18, 1942. 2. 19, 3. 5, 3. 26, 4. 2, 1943. 9. 23, 1945. 3. 1, 10. 25)
- 동광(東光)(1932. 9. 1) 제37호
- 조선일보(1961. 12. 15)
- 국민보(1962. 3. 28, 4. 4)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3권 347면, 제7권 5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