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평안북도(平安北道) 구성군(龜城郡) 천마면(天摩面) 출신이다. 1930년 음력 12월 중국 봉천성(奉天省) 집안현(輯安縣)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9년 4월 국민부가 설립되었고 12월 20일 민족유일당조직동맹이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으로 개편되었다. 조선혁명군은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의 당군(黨軍)이었다. 조선혁명당은 이당치국(以黨治國)의 원칙에 따라 국민부와 조선혁명군을 지도했다.
한정범은 1931년 2월 15일 환인현 사전자(砂甸子)에서 조선혁명군 제1중대 제1소대장 김동선(金東善)의 권유로 조선혁명군에 가입했다. 이후 국민부 본부 비서 이인근(李仁根)이 공금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한정범은 같은 해 10월 3일 정응선(鄭應善)‧최해순(崔海淳)‧문석호(文錫浩)와 함께 환인현 두도위자(頭道威子)에 가서 공금을 횡령한 이인근을 처단하였다. 이후에도 국민부와 조선혁명군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1932년 4월 4일 집안현 위사하 두외자에서 체포되어 신의주경찰서에 압송되었다.
1932년 12월 1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살인‧불법체포’등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1933년 2월 14일 평양복심법원 재판 결과 징역 5년 4월 6일로 감형되었다. 김천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7년 3월 11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평양복심법원 : 1933. 2. 14)
- 매일신보(每日申報)(1932. 4. 7, 12. 12)
- 동아일보(東亞日報)(1932. 4. 8, 12. 12)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0집 6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