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40년 춘천중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권혁민은 평소 일제의 일본어 상용(常用) 강제와 한일(韓日) 학생의 차별적 대우에 저항하며 조국의 독립을 희망하고 있었다. 같은 해 12월부터 이란(李蘭)·이광훈(李光勳) 등의 학우들과 여러 차례 모임을 가지고 일제의 탄압 실상과 독립운동가의 활동상 등을 토론하며 민족의식을 함양하였다.
또한 일본군이 중국에서 승리하는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고 있으나, 사실이 아니며 장기전이 되면 일본은 물자가 부족하여 패전할 것이라는 전황(戰況)을 공유하였다. 국제정세를 논의하면서 미일전쟁이 발발하면 선배의 지도를 받아 독립운동에 참가할 것을 결의하였다. 1941년 3월에는 ‘우리말 사용에 힘쓰고 일본어 사용을 금지할 것’, ‘조선독립 달성을 위해 민족이 단결할 것’, ‘민족의식을 주입할 것’ 등을 결의하였다.
1941년 2월 권혁민은 학우들과 함께 교내 무기고 앞에서 일본인 학생을 구타 응징하며 민족의식을 표출하였다. 또한 교련 과목 담당 일본인 교사에게 협박문을 보내고 자택을 습격하여 창유리를 파괴하는 등 식민교육에 저항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42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육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을 선고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같은 날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단기 6월 장기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42. 5. 19)
- 사상(思想)에 관한 정보(情報)(13)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상록회약사(常綠會略史)(이인교, 1976) 10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7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