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이 발표되어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목포에서는 기독교인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4월 7일부터 9일까지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4월 8일 양동(陽洞)에서는 양동교회의 교인 서상봉(徐相鳳)・곽우영(郭宇英) 등이 만세시위를 준비하였고, 영흥학교(永興學校)와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 학생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또한 목포상업학교와 목포공립보통학교 학생들도 참여하여 만세시위 규모가 확대되었다. 주동자들은 새벽부터 선언서・태극기 등을 배포하였고 오전 10시경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대형 깃발을 들고 만세시위를 벌였다.
4월 9일 죽동(竹洞)에서는 전날 일어난 만세시위 참여자들의 연행에 대해 항의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만세시위가 있었다.
양동에 거주하던 이재준은 학생으로 목포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1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 및 ‘출판법(出版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벌금 40원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2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3권 609~6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