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32년 11월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에서 ‘동양제사공장 동맹파업 계획 사건’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진해경찰서에서 조사받았다. 동양제사공장은 일본인 자본가가 세운 곳으로 남녀직공이 360여 명에 달하는 큰 공장이었다. 남자 직공 50~60명을 제외한 300여 명의 여직공은 모두 10대 중후반의 나이로 저임금에 시달렸다.
1933년 1월 4일 동양제사주식회사의 여공(女工) 250여 명은 동맹파업을 했다. 동맹파업의 요구 조건은 “1. 임금은 최저 25전으로 하여 일급(日給)으로 정할 것 2. 현재의 12시간 노동을 10시간으로 단축할 것” 등이었다. 이 동맹파업 선동 혐의로 진해경찰서에 체포되어 같은 해 2월 구류처분을 받았다.
1933년 11월 ‘소비에트 러시아 혁명 16주년 기념일’이라고 해서 진해경찰서 고등계에게 가택수사를 당하고 체포되었다. 창원군 웅동면(熊東面)에서 농촌청년을 교양시켰던 합법적인 친목계인 ‘처녀계’를 조직했다. 이 조직을 바탕으로 1934년 초 창원군 진해에서 조맹규 등과 함께 공산주의 사상강좌를 개최하고 웅동적색농민조합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로 인해 1934년 10월 23일 체포되었다. 1937년 1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미결 500일 산입)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일보(朝鮮日報)(1932. 12. 3, 1933. 1. 14, 1. 19, 1934. 3. 3, 3. 6, 10. 25, 1935. 3. 17, 1936. 5. 10, 1937. 1. 20)
- 동아일보(東亞日報)(1933. 1. 7, 2. 7, 1935. 1. 16, 3. 29, 1936. 5. 11)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3. 11. 11, 1935. 3. 18, 3. 29)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