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고향인 평안남도(平安南道) 안주군(安州郡)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22세가 되던 1925년 무렵 만주로 건너갔다. 1929년 음력 2월 무렵 중국 길림성(吉林省) 반석현(盤石縣)에서 정의부에 가입하였다. 이때부터 반남특별구 경비대원으로 활동하며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음력 3월 12일 동지 한태훈(韓台壎)·이택영(李宅英)과 함께 정의부에서 교부 받은 권총을 소지하고 중국 길림성 휘남현(輝南縣) 유목구(流木溝)에서 군자금 1,590여 원을 모집하였다. 다음날인 음력 3월 13일에는 휘남현 안자하(安子河)에서 군자금 1,080여 원을 모집하였다.
군자금 모집에 힘을 기울이던 중 한태훈·이택영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9년 6월 1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과 강도’ 등을 이유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2년 12월 7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가출옥집행제(假出獄執行濟)의 건(件) 보고(報告)(신의주형무소장:1932. 12. 7)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29.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