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30년 6월 상순 무렵 중국 요녕성(遼寧省) 흥경현(興京縣) 왕청문(旺淸門)에서 국민부 제2중대장 양세봉(梁世奉)의 권유에 따라 국민부에 가입하였다. 이후 국민부 조선혁명군 부대의 문서 정리와 반(反) 국민부 세력 처단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 6월 20일 양세봉의 명령에 따라 국민부와 대립 관계에 있던 유하현(柳河縣) 고산자(孤山子)의 조재강(趙在剛)을 처단하였다.
1932년에 들어서자 일제의 중국 만주 지역 한인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진행되었다. 이 무렵인 1932년 3월 무렵 일본 봉천영사관(奉天領事館) 경찰에 의해 허성록(許成祿)·양준국(梁俊國)·조병수(趙秉秀)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1933년 1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을 이유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34년 감형받고, 1936년 10월 30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32. 4. 10, 1933. 1. 26, 2. 2)
- 매일신보(每日申報)(1933. 1. 26)
- 조선일보(朝鮮日報)(1933.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