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4세 때 부모를 따라 중국 요녕성(遼寧省) 통화현(通化縣) 금두화락(金斗伙洛)으로 이주하였고, 통화현 쾌당모자(快當帽子)에 위치한 조선인 사립학교에서 한문을 수학하던 중,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다가 퇴학을 당하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9년 음력 8월 중순 무렵 국민부 조선혁명군 지휘부 부관 전운학(田雲鶴), 일명 김정(金晶)으로부터 권유를 받아 국민부 조선혁명군에 가입하였다. 전운학 부대원으로 활동하며 통화현 금두화락과 쾌당모자 지역을 근거로 친일조직인 한인동향회(韓人同鄕會)의 세력 확대를 막기 위해 교통을 차단하고, 의무금을 모집하는 임무에 힘을 기울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포착한 일제의 통화현 영사관 분관은 부대를 쾌당모자로 파견하여, 중국 관헌의 도움을 받아 1929년 10월 18일 국민부 조선혁명군과 교전하였다. 이때 같은 부대원 홍장석(洪長錫)과 함께 체포되었다. 1932년 6월 2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을 이유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2년 6월 22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29. 11. 19, 12. 10, 1932. 6. 25)
- 매일신보(每日申報)(1929. 12. 9, 1932. 6. 2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10집 420면